수북정 은 휘 흥국(興國, 嘉靖 丁巳 1557년 ~癸亥 1623년 3월 28일)의 호이고 익찬공의 현손이다.
공께서 양주목사(楊州牧使)로 계실 때 광해군(光海君)의 폭정이 심하여 하직코자 하시던 중
족질 승평공(昇平公) 북저(北渚)와 문우 연평공(延平公) 이귀(李貴)의 반정참여(反政參與)를 권유받고
나는 이미 광해조(光海朝)의 녹(祿)을 먹어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길을 가겠으나 공들이나 이윤(伊尹)과 곽광(藿光)의 공을 세우라며 낙향(落鄕) 하시어
가솔(家率)에 이르기를 어찌 영달(榮達)에 얽매이겠느냐. 나 죽은 후 양주목사모지묘(楊州牧使某之墓)라고만하라고하였다.
인조반정(仁祖反正)후에 부제학(副提學)으로 소명(召命)을 받았으나 불사(不仕)하고
부여(扶餘)의 백마강(白馬江)가 정자를 짓고 자기 호를 따서 수북정이라 하여
상촌(象村) 신흠(申欽)이 팔경(八景)을 읊었는데
而於孤山松雪有 恠來凍雪深如許 應試孤標耐歲寒
괴이하게 싸인 눈 속에 외롭게 선 솔가지, 이 추운 겨울 어찌 견디어 낼건가 라 하였다.
사계김 장생(沙溪 金長生1548(명종 3)∼1631(인조 9). 추포 황신(秋蒲浦 黃愼1560년(명종 15) ~ 1617년(광해군 9)) 상촌 신흠(象村, 신흠(申欽, 1566~1628) 약봉 서성(藥峰 徐渻1558년 ~ 1631) 남곽 이호민(南郭, 李好閔 1553(명종 8)∼1634(인조 12) 등과 교유함
문집이 전하여 짐
소재지 : 扶餘郡 규암(窺岩)면 규암리 1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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