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공(明宗3 무신(戊申) 1548~0000년 4월 28일)은 菊潭公 휘 有溫의 六세손으로
선조(宣祖)10 丁丑 1577 알성시(喝聖試) 문과에 장원(壯元)하고
요직을 거쳐 통정대부의주목사(通政大夫義‘州牧使) 때 명(明)나라에 왕래하는 통사관의 실언으로 구금되었다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서임되어 신립(申砬)장군의 부장(副將)으로 출전,
조령(鳥嶺)방어전을 뒤로하고 신립장군의 의견을 따라 충주(忠州)에서 달천(達川)에서 배수진(背水陣)으로 왜적 고니기 유키나가(倭敵, 小西行長)의 군사를 방어하다가 전멸
4월 28일 탄금대(彈琴臺)에서 투신(投身) 순절(殉節)
의관장(衣冠葬)으로 모심.
증순충적덕겸의보조공신(贈純忠積德兼義輔祚功臣) 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 순창부원군(順昌府院君) 시호 장의(壯毅),
공은 충성스럽고 정직 관후(寬厚)하며 과단성(果斷性)이 있음. 학문이 뛰어나고 행의(行誼)가 돈독하며 문사(文辭)와 활쏘기에 능함.
정려(旌閭)가 내려지고 행적(行蹟)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이 올라 있음
配貞敬夫人咸‘陽朴氏와 合窆이시다.
시사일 : 음10月 10日
소재지 ; 安山시 단원(檀園)구 와(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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